몰랑몰랑한 푸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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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 잊혀질 메이플

0.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저 그 아름다운 선율을 다시한번 듣고싶었다.



1.
텅빈 시간의 신전은 그 누구의 발자국도 남아있지 않았다. 차갑게 식어버린 전투의 흔적과 무너질듯 내리는 빗소리뿐.
얼음속에 갇힌 자신의 오랜 친우를 등지고 다시한번 방문한 그 고요함 속에서 그는 그저 그 모든것을 다시금 찬찬히 바라본 후에야 떨리는 숨을 들이쉬었다.
이 적막은 어째서 내 숨을 조여오는건가. 차갑게 식은 공기가 폐부를 가득 채웠다. 빗소리는 서늘한 냉기가 되어 그의 목을 졸랐고 여즉 어둡게 물든 하늘은 그 빛을 되찾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분명 세계를 구했음이 분명한 영웅임에도 세계는 그에게 빛을 허락하지 않았다. 단 한줄기의 빛도 보이지 않음에 그 앞에 보이는 것은 분명 나락이었다.


"아란... 루미너스... 팬텀... 메르세데스..."


나는 무엇을 구했는가.
대답없는 동료들의 이름을 부르며 로드를 손에 쥐었다. 이제는 지킬만한 것들을 모두 잃어, 더 이상 쓸 일이 없는 로드는 그 머리를 바닥으로 내린채 힘없이 늘어졌다. 그의 머리도 따라 바닥을 향해 떨궈지듯 수그러졌다. 연신 그리운 이름을 불러대는 목소리도 점차 작아졌다. 그와 동시에 그를 부르는 동료들의 목소리도 점점 희미해져갔다.

'프리드!'
잊혀질듯 희미한 목소리만이 떨어지는 그를 붙들고 있었다. 그저 붙들뿐인 목소리라, 이를 악물고 알수없는 먹먹함에 되는대로 소리를 질러댔다.
이런 결말을 기다려왔던 것이 아닌데, 이런 끝을 바라고 이 세계를 위해 달려온것이 아닌데. 진리에 통달한 대마법사도, 희생으로써 세상을 밝히는 성자도 되고싶지 않았다. 그저 눈앞에 보이는 길이 그것뿐이라 그저 있는 힘껏 내달렸을뿐. 심지어 그 끝조차 완벽하지 않아서, 저 심연에서 새어나오는 어둠을 바라보며 그는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며 억눌린 신음을 내뱉는것 외엔 할 수 있는것이 없었다.

평화를 위해 달려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점점 이 세상에서 사라져가는 지금의 나로썬 그게 무엇이었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않아.
새하얗게 질리도록 세게 쥔 주먹을 공중에 내리꽂았다.



2.
누군가에게 의미있는 존재가 되기위해 살아간다는 말을 들은적이 있었다.
잊혀져가는 지금에서야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3.
동료들의 흔적을 찾아 이 세계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뜨겁게 작열하는 사막이나 햇빛조차 들지않는 울창한 숲, 사람보다 펭귄이 더 많은 냉대지역까지. 전쟁이 끝난 이후, 그의 발걸음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돌아다니며 동료들의 흔적을 찾아다녔다.
어쩌면 나 자신의 흔적을 찾아 다닌건지도 몰라. 쓰게 웃으며 망토를 여미는 그의 눈에 높은 나무 사이사이로 작은 페어리들이 눈에 띄었다.

슬슬 도착한걸까. 텔레포트로 자신에게 달려드는 페어리들을 피해다니던 와중 선선히 제 얼굴을 휘감는 바람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주위를 경계하던 그의 얼굴에서 긴장이 눈녹듯 사라졌다. 그 대신 물씬 올라오는 그리움에 금새 울어버릴듯 일그러졌다.

이곳이 마지막이야. 아름답게 흩날리는 벚꽃잎을 맞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얼음에 갖힌 엘프들이 그대로 세월의 풍파를 빗겨가는곳. 그들의 왕을 영원히 잊지않고자 봉인을 받아들인 그들의 표정은 심지어 평온해보이기 까지 했기에 그는 형용할 수 없는 기분에 마침내 무거운 고개를 떨궜다.

영원히 새겨질 그 의미가 미치도록 부러우면서도 잊혀지지 않을 친우의 존재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혼자 남겨진 데에 대한 미안함과....

고개를 든 그의 눈에 커다란 악기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순간 그의 귓가에 그리운 선율이 흘러내렸다. 아름다운 바람을 그대로 담은 듯, 그의 아름다운 동료는 늘 이곳에서 여유로운 표정으로 저 하프를 퉁기곤 했다. 그 모습이 그대로 새겨진듯 눈앞에 떠올라, 마침내 그의 눈에서 방울이 떨어질 무렵. 바람이 하프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4.
잊혀지는게 두려웠기에 그들을 잊혀지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스스로가 의미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증명하기보단 차라리 언젠가 깨어날 그들의 기억속에 영원히 남기로 했다.
손 안에 담긴 작은 반지를 보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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