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랑몰랑한 푸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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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팬루 메이플

은은한 달빛이 조용한 바람과 함께 다가왔다. 울창한 숲으로 이루어져 그 끝이 보이지 않는 엘리니아는 신기하게도 달의 여신의 가호라도 받은듯 유독 달빛이 강한 곳이었다. 울퉁불퉁한 가지들이 땅에 내려앉는 달빛에게 길을 양보하기라도 한듯, 그 둥근 달이 여과없이 보이는 언덕 위에 올라 새하얀 빛의 조각들을 받노라면 마법에라도 걸린 것마냥 머릿속이 뿌옇게 변했다.

어쩌면 그 마력이 눈에도 끼었던걸지도 몰랐다. 옆에 나란히 앉아있던 새하얀 소년이 다시금 제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의 근처에서 은은히 그 빛을 발하는 오브와 찬란한 빛의 정령들.
단순히 그가 빛의마법사이기 때문이라는건 잘 알지만, 순간 그의 모습이 땅에 내려온 달의요정 같아 턱 숨이 막혀왔다. 이제는 소년이라고 하기에 어려운 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얀 사람이다. 그 하얀 상아상 같은 자태에 은은한 달빛이 반사되어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분위기에 취했던걸까. 저도 모르게 평소라면 잘 숨겼을 속내를 흘리듯 들켜버렸다.


"달이.... 아름답네요..."


말을 꺼내고도 제가 더 놀라 힐끔, 그를 바라봤다. 감히 닿아서는 안되는 새하얀 순수에 처음으로 발자국을 남기는 꼬마아이의 기분이었다. 그런 죄책감과, 다시는 돌이킬수 없는건 아닐까 하는 걱정에 심장이 기이하도록 뛰어댔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선 슬그머니 작은 기대감이 고개를 들었다.

혹시 내 마음을 알아줄까, 받아주진 않을까.

묘한 기대감을 안고 그를 바라봤다. 갑작스런 혼잣말에 반응하듯 저를 돌아보는 그의 붉은눈이, 오늘따라 유독 뜨겁고 설레여서. 어쩌면 오랜 속앓이를 알아채주는걸까, 진지한 생각으로 그의 두 눈을 마주했다.
아, 정말. 몇번을 마주해도 진정이 되질 않아. 입을 맞춰버릴까, 세게 끌어안을까.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속으로 발을 동동 굴렀다.

세계 제일의 괴도의 마음을 훔쳐버린 널 어떻게 해야할까. 몇번을 고민하면서도 내 눈은 너의 입술에 고정되어 있어서, 내 마음을 쥐락펴락할 너의 대답을 기다리면서도...


"....무슨 헛소리냐, 좀도둑."


그렇지만 너의 대답은 늘 한결같아서. 잔뜩 긴장했던 나를 단번에 바보로 만들어버리곤 자신이 무슨 짓을 한건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이쪽을 바라봤다. 비죽 올라간 짙은 눈썹과 꾹 앙다문 고집스러운 입매. 하기야, 이래야 샌님이지.
그야말로 달과 같은 사람이다. 닿을수도, 닿지도 않는.


"응? 아냐, 됐어. 멍청한 샌님은 죽어도 모를 이야기랄까."


그러나 늘 바라보고, 늘 품에 안고싶은 사람.
매끈한 얼굴을 씨익- 둥글게 휘고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뜨겁게 달아올랐던 심장은 늘 그렇듯 제 페이스를 찾았다. 늘 먼저 반해버린 쪽이 지는거니까. 생긴것처럼 마음까지 하얀 사람이라, 그 순수함마저 사랑해버린건 분명 이쪽이었다. 그렇기에 늘 야속하면서도 다시한번 반해버릴 수 밖에 없어.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여전히 불퉁스러운 얼굴로 저를 쫓아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휘휘, 젓는 손에 더 놀릴까 하다가 이내 비식 웃고는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여간 낭만이라곤 죽어도 모르는 샌님이라니까.


"샌님도 그만 청승부리고 어서 들어가, 귀여운 아가씨 걱정시키지나 말라고."


언덕을 내려가며 힐끗 그를 향해 덧붙였다.
샌님과 동거중이라는 그 소녀의 걱정따위 전혀 알 바는 아니었지만 슬슬 바람이 차갑게 식어갔다. 혹여 감기라도 걸리는건 아닌지 걱정이 됐다. 아니, 그쪽도 나쁘진 않을것 같은데. 마지막으로 그의 뒷모습을 눈에 담곤 미련이라도 생길라 서둘러 저만의 비공정으로 돌아갔다.

하늘 위의 달을 바라본다. 그렇지만 역시 방금전과 같은 아름다움은 느껴지지 않아서, 그대로 눈을 감고는 다시금 새하얀 빛을 되새겼다.


***


요란한 소리와 함께 인기척이 사라졌다. 뒤돌아보진 않았지만 굳이 보지 않아도 그가 돌아갔다는걸 알 수 있었다.
마지막까지 시끄러운 녀석이야.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여즉 식지않는 얼굴을 두손으로 부여잡곤 두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좀도둑 같으니라고, 도대체 그런 말은...."

달이 아름답네요


금방이라도 터질것 같은 심장에 으으 앓는 소리를 냈다. 매끈한 얼굴을 떠올리자 더욱 거세게 뛰어대는 심장을 애써 무시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이미 머리속을 가득 채운 붉은 열기에 굴복해버려, 김까지 올라오는듯한 기분에 하염없이 달을 올려다봤다.
그렇지만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니었나. 달처럼 화려하게 빛나는 팬텀-그의 모습이 다시 머릿속에 그려지면서 다시금 이성적인 생각을 할수가 없음에, 괜시리 그를 탓하며 두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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